엔비디아가 한국에서 국가 단위 바이오뱅크 구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구집단 건강 연구와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연구 인프라를 마련하는 구상으로, SK바이오팜 등 국내 바이오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엔비디아 헬스케어·생명과학 부문 글로벌 사업개발 총괄인 로리 켈러허(Rory Kelleher) 시니어 디렉터는 지난 2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26 BIO International Convention(BIO USA 2026)' 기간 중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AI 바이오 연구 환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켈러허 디렉터는 한국 기업 가운데 AI 신약개발을 적극 추진하는 사례로 SK바이오팜을 언급했다. 그는 SK바이오팜과 인실리코 메디슨의 최근 파트너십을 거론하며 "SK바이오팜이 신경질환 분야 AI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인구집단 건강 연구뿐 아니라 신약 발굴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 국가 단위 바이오뱅크와 같은 것을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뱅크는 혈액과 조직, 세포, DNA 등 인체 유래 자원과 임상 정보를 함께 보관·관리하는 연구 기반시설이다. 최근에는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해 질병 예측과 신약 후보물질 발굴, 정밀의료 연구를 고도화하는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엔비디아는 구체적인 사업 추진 방식이나 일정, 참여 기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SK바이오팜이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는지 여부나 양사 간 공식 협력 계획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않았다.
SK바이오팜 역시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회사 측은 "AI 활용과 관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글로벌 AI 기업인 엔비디아가 한국을 대상으로 국가 단위 바이오뱅크 구축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의미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AI 기반 신약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의 의료·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생태계 구축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경질환 분야는 유전체와 의료영상, 임상 정보, 장기 추적 데이터 등 방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한국인 특성에 맞는 대규모 데이터가 확보될 경우 AI 모델의 정확도를 높이고 신약개발 효율성도 향상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바이오팜도 AI를 미래 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BIO USA 2026 기자간담회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강화해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지만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다"며 "GPU 활용도 함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최근 의료영상 분석과 유전체 연구, 단백질 구조 예측, 신약 발굴 등 생명과학 전반으로 AI 플랫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켈러허 디렉터는 한국 연구 역량을 소개하며 서울대학교 마틴 슈타이네거 연구실의 단백질 및 유전체 분석 기술과 GPU 기반 다중서열정렬(MSA) 연구를 사례로 들기도 했다.
글로벌 제약업계가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경쟁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역할도 단순한 GPU 공급을 넘어 데이터 플랫폼과 연구 인프라 구축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향후 한국에서도 국가 차원의 바이오 데이터 기반이 마련될 경우 AI 신약개발 생태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최예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