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의 주범 윤길자 씨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줘 유죄 판결까지 받았던 의사가 건강보험급여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공공기관의 평가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 중인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의료 윤리를 저버린 인물이 공공 의료 심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모님 청부살해 사건' 당시 윤 씨의 주치의였던 박병우 전 연세대 교수가 지난 4월 1일, 임기 2년의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으로 임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진료심사평가위원회는 요양급여 대상 여부와 진료비 심사 기준 등을 결정하는 심평원의 핵심 기구 중 하나다.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은 지난 2002년, 전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였던 윤길자 씨가 자신의 사위와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한 여대생 하 모 씨를 잔인하게 청부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윤 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됐으나, 유방암 치료 등을 명목으로 허위·과장 진단서를 발급받아 수차례 형 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교도소 대신 병원 특실에서 생활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병우 위원은 윤 씨의 형 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허위 진단서를 작성 및 발급해 준 혐의(허위진단서 작성·행사)로 기소되어, 지난 2017년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의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이 사건은 의료인의 윤리 의식 부재가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악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이러한 전력이 있는 인물의 공공기관 위원 임명에 대해 심평원 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심평원은 "해당 전문과목의 공석이 발생해 인력 충원이 필요했고, 정부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 관련 지침을 모두 준수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최종 임용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범죄 사실이 명백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을 국민 건강보험 재정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중책에 앉힌 것은 심평원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김선민 의원은 "의료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윤리성을 상실해 실형을 선고받은 인물이 어떻게 국민의 의료비를 심사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심평원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것"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