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묘 일대 초고층 건물 건설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된 지 하루 만에,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가 현장에서 다시 정면으로 맞섰다. 대법원이 서울시의 조례 개정을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문화유산 훼손 우려를 이유로 문화재 당국이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갈등이 재점화된 것이다.
5일 오전,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문화유산청장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울 종묘를 직접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이들은 종묘 정전 앞에서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도심 개발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장관은 “하늘을 가리고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 문화유산은 고립된다”며 “이것이 바로 19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이라고 직격했다. 이어 “법 개정과 특별법 제정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종묘의 역사문화환경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약 3시간 뒤, 오세훈 서울시장이 즉각 반박에 나섰다. 그는 종묘 맞은편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정부의 도시정비 사업을 일방적으로 폄훼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서울시는 낙후된 도심을 재생하고, 종묘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재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종묘에서 청계천, 을지로,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 축을 새롭게 조성해 문화유산과 현대 도시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며, “정부와의 대화의 장을 조속히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서울시가 2019년 개정한 도시계획 조례에 있다. 해당 조례는 종묘 인근 세운4구역에 최고 145m 규모의 초고층 건축을 허용한 것으로,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 보호구역의 경관을 훼손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지난 4일 대법원은 “서울시의 조례 개정은 절차상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문화재 보호는 별개의 사안으로, 국가유산청장이 사업 시행사에 필요한 보완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며 문화재청의 개입 여지를 남겼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30년까지 종묘 앞 청계천 일대를 포함한 세운4구역 재개발을 완공한다는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구역에는 주거·업무·문화시설이 복합된 40층 이상 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으로, 사업비만 약 2조 원에 달한다.
문화재 당국은 재개발로 인한 일조권·조망권 침해, 문화경관 훼손을 우려하며 공사 중단 명령 또는 사업 변경 요구 등 행정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행정 절차의 정당성만 인정했을 뿐, 문화유산 보호와 개발의 균형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시민 여론도 엇갈린다. 인근 상인들은 “세운상가 일대는 40년째 낙후돼 있어 개발이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문화재 보존 단체들은 “초고층 건물로 종묘의 하늘이 가려지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정 공방이 끝난 뒤에도 양측의 장외 설전이 이어지면서, 종묘 일대 재개발은 또 다른 정책 충돌의 상징적 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