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5일, 울산의 한 저수지 근처 차량 안에서 정우경 소방장(가명·사망 당시 41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너무 괴롭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3년 전 태풍 차바 구조 현장에서 동료 강기정 소방사(가명·사망 당시 29세)를 잃은 뒤 그가 평생 지고 살아야 했던 ‘재난 트라우마’의 고통이었다.
2016년 10월 5일, 울산 울주군을 강타한 태풍 차바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남겼다. 당시 정 소방장은 급류에 휩쓸린 구조 현장에서 전봇대를 붙잡고 버티다 동료 강 소방사를 놓쳤다. 육체적 부상은 회복됐지만, 그는 그날 이후 깊은 죄책감과 불면증, 우울감에 시달렸다. 8개월 뒤 남긴 메모에는 “여전히 괴롭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 했다”는 문장이 반복됐다. 사물함에는 세상을 떠난 동료의 소방복이 여전히 그의 복장 옆에 걸려 있었다.
정 소방장의 죽음은 재난이 남긴 정신적 상처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깊게 남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비극 이후에도 유사한 일이 반복됐다.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에 투입됐던 남 모 소방장(44)이 지난 7월, 박 모 소방교(30)가 8월 각각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모두 ‘재난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으나, 그들의 죽음은 ‘현장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 10년간(2015년~2025년 6월) 자살한 소방공무원은 총 141명. 이 가운데 순직으로 인정받은 이는 23명뿐이며, ‘위험직무 순직’으로 분류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정 소방장은 그 중 한 명이었다. 가족과 동료들이 1년 넘게 진상 규명과 증거 수집에 나서며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게 됐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태원 참사에 투입된 뒤 우울증을 앓다 숨진 박 소방교의 사례는 더욱 냉혹했다. 유가족과 노동조합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관장(소방관서장) 장례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사망 원인이 ‘직무 중 사고’가 아니라 3년 전 재난의 후유증이라는 이유였다. 인천시 조례에 따르면 장례 지원 대상은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소방관”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창석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현장에서 시민을 구하고 받은 마음의 상처인데, 마지막 길조차 예우받지 못했다”며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신적 상처가 조직 내에서조차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6년차 소방관 오 모 소방위(45)는 “수많은 사망 현장을 마주하면서 생기는 우울감은 자연스럽지만, 정신적 문제를 드러내면 ‘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렵다”며 “약을 복용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실제 지난해 소방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소방관 6만여 명 중 자살위험군은 5.2%에 달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겪는 인원도 각각 7.2%, 6.5%로 조사됐다. 그러나 정신건강 문제로 공무상 요양을 청구한 사례는 단 31건, 그중 승인된 건은 20건에 불과했다. 광범위한 고통에 비해 제도적 인정과 치료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한 9년차 소방교는 “당시 현장은 현실감이 사라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장면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을 억누르려 노력하지만, 결국 무뎌지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오는 11월 9일, 제63회 소방의 날을 앞두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오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국민 영웅”이라며 “그 헌신에 걸맞은 보상이 뒤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선 소방관들은 여전히 마음의 상처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이창석 위원장은 “국민을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는 칭송받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마음의 병은 외면받고 있다”며 “더 이상 ‘119’라는 이름이 자부심이 아닌, 고통의 상징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 소방장의 사물함에는 여전히 두 벌의 소방복이 걸려 있다. “같이 살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오늘도 수많은 소방관들의 마음속에서 경고처럼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