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가 홍콩 역사상 손꼽히는 인명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단순한 건물 화재를 넘어, 외벽에 설치된 건설용 임시 가설물인 대나무 비계와 안전망이 불길을 수직 및 수평으로 급속히 확산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30년 만에 최악의 참사로 비화했다는 분석이다.
홍콩 소방 당국에 따르면 27일 오전 6시 기준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4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최초 보고된 수치에서 급격히 증가한 수치로, 소방관 1명이 순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실종자는 279명에 달하며, 병원으로 이송된 부상자 45명 중 상당수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단지 총 8개 동 중 7개 동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대규모 주거 단지의 안전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웡 푹 코트는 31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 8개 동으로 구성된 대단지로 약 2천 가구, 4천8백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곳이다. 불길은 현지 시각 오후 2시 50분경 단지 내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발화 지점은 조사 중이다. 사태의 규모를 키운 핵심 요인은 장기간 진행되던 보수 공사를 위해 외벽을 둘러싸고 있던 대나무 비계와 녹색 공사용 안전망이었다.
홍콩 건설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대나무 비계는 저렴하고 유연하다는 이유로 고층 건물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왔으나, 불에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이번 화재는 외벽을 감싸고 있던 인화성 물질이 불길을 건물 전체로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면서 수평 간격이 좁은 건물들 사이로 불이 번지는 연쇄 화재로 이어졌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장면은 대나무 비계가 고층 건축물에서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홍콩 정부는 올해 초 공공 사업에서 대나무 비계 사용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을 밝혔으나,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전면적인 사용 금지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홍콩 당국은 이번 화재에 최고 등급인 5급 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4명이 사망했던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 이후 17년 만에 발동된 최고 수준의 대응이며,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두 번째 초대형 화재로 기록됐다. 현장에는 소방차 128대와 앰뷸런스 57대가 동원되었으나, 맹렬한 불길과 고열로 인해 초기 진화 및 구조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화재 발생 이후 홍콩 경찰은 건물 보수 공사 책임자 남성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해 조사에 착수했다. 이는 초기 화재 진압 및 안전 관리 과정에서의 부실 책임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존 리 행정장관은 "우선순위는 화재 진압과 갇힌 주민들을 구조하는 것이며, 이후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약 900명의 주민이 인근 학교 등으로 대피한 상태이며, 구조 당국은 건물 수색 과정에서 실종자 대부분이 건물 내부에 고립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참사는 도시 인프라의 노후화와 전통적 건설 방식이 결합된 고층 도시의 안전 취약점을 드러내며 대규모 인명 피해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