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오래 함께 살면, 어느 순간부터 말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그 침묵이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린 왜 이렇게 대화를 안 하지”라는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깨닫게 된다. 말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말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자리를 편안한 태도가 채우고 있다면 관계는 깊어지고, 무심함이나 냉소가 채우고 있다면 관계는 서서히 닳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 사이는 말로 유지되지 않는다. 태도가 관계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젊을 때의 부부는 각자의 역할로 바쁘다.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고, 하루를 버티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그 시기에는 관계의 질을 따질 여유가 없다. 힘들어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넘긴다. 하지만 중년 이후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이는 손이 덜 가고, 삶의 속도는 느려지며,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때부터 부부는 역할이 아니라 태도로 평가받는다. 같은 집에 살아도 마음이 멀어질 수 있고, 반대로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를 잘 챙기는 남자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타고난 로맨티스트도 아니다. 다만 관계를 대하는 기본값이 다르다. 그들은 아내가 해온 일들을 자동화된 배경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반복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수고를 의식적으로 바라본다. 밥상이 차려지는 과정, 집이 유지되는 과정, 가족의 일정과 감정이 관리되는 과정이 누군가의 노동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작은 순간에도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그 말은 감정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런 인식이 쌓이면 관계의 온도는 쉽게 식지 않는다.
대화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아내가 힘든 이야기를 꺼낼 때,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늘 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설명을 재촉하지 않고, 감정을 먼저 받아주는 태도. “그랬구나”라는 한마디가 “그러니까 네가 잘못한 거야”라는 긴 설명보다 관계를 더 살릴 때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보다, 같은 편이 되어주려는 자세가 먼저 나올 때 대화는 닫히지 않는다. 말의 능숙함보다 태도의 순서가 관계를 지탱한다.
아내를 잘 챙기는 남자들은 자신의 삶을 아내에게 과도하게 기대지 않는다. 외로움과 불안, 감정의 기복을 모두 아내가 감당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이나 유일한 버팀목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의 리듬을 유지한다. 취미를 갖고, 관계를 넓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감당할 줄 안다. 이런 태도는 관계를 멀어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상대를 붙잡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 그 여유가 관계를 오래 가게 한다.
표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표현은 줄어들기 쉽다. “이제 다 알잖아”라는 말로 많은 것이 생략된다. 그러나 관계는 알고 있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느껴져야 유지된다. 아내를 잘 챙기는 남자는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이에 맞게 표현을 바꾼다. 젊을 때처럼 과장된 말이나 이벤트는 아닐지라도, 눈을 맞추고 건네는 한마디, 자연스러운 손길, 수고를 알아주는 말들을 멈추지 않는다. “이 나이에 뭘”이라는 말로 자신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기 때문에 더 필요하다는 걸 안다.
이런 태도들은 하나하나 보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에서 반복될수록 관계의 결을 바꾼다. 아내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 조언보다 공감을 먼저 내미는 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태도, 표현을 낡은 것으로 방치하지 않는 태도. 이 모든 것은 말보다 행동으로, 행동보다 분위기로 드러난다.
좋은 남편은 처음부터 완성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늦게 배운다. 실수하고, 놓치고,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는 순간, 관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 사이는 말보다 태도라는 말은, 결국 사랑의 크기를 말하는 문장이 아니라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문장이다. 다정한 말보다 다정한 습관, 설득보다 존중, 이벤트보다 반복되는 배려. 그런 태도가 남은 시간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