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당시 수립된 대형 원전 2기 건설 계획이 이재명 정부 들어 존폐 기로에 섰으나, 결국 원안대로 추진되는 것으로 확정됐다. 인공지능(AI) 산업 전력 수요 급증과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현실적 과제 앞에 정부가 사실상 탈원전 기조를 철회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을 계획대로 이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은 조만간 부지 공모 절차에 착수하며, 2030년대 초 건설 허가를 획득해 2037년과 2038년에 각각 준공한다는 목표다. 총 2.8GW 규모의 대형 원전과 더불어 2035년 도입 예정인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도 차질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당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원전 건설 계획은 불투명한 상태였다. 김 장관은 후보자 시절 원전 건설 불가피론을 폈으나, 취임 후 "국민 공론화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며 신중론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원전 건설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반도체와 AI 등 첨단 산업을 위한 안정적인 기저 전력 확보가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정책 결정자들의 기류가 급변했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과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인식의 변화를 드러냈다. 그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전력망이 고립된 한국의 여건상 원전 없는 에너지 안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해외에 원전을 수출하는 정책적 모순이 "궁색했다"고 자성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두 축으로 하는 에너지 믹스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압도적인 찬성 여론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부가 실시한 미래 에너지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60% 이상이 신규 원전 건설 추진에 찬성했다. 특히 20대 등 젊은 층에서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면서 정부의 정책 추진에 힘을 실어줬다. 김 장관은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이를 토대로 최종적인 추진 방향이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입장을 정리하기까지 발생한 혼선과 시간 낭비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원전 건설에 통상 14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할 때, 공론화를 이유로 지연된 시간이 결국 준공 일정 압박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이 과거 "10년 뒤에나 가동될 원전이 무슨 정책이냐"고 힐난했던 발언이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됐다.
탈핵 단체 등 시민사회와의 갈등도 여전한 과제다. 탈핵시민행동은 정부의 토론회와 여론조사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와 부지 선정 갈등 등 핵심 쟁점을 외면한 채 기술적 논의와 인상 비평에 그쳤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수립될 제12차 전기본 과정에서 이러한 쟁점들을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입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할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정책 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