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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법 통과 후폭풍…의료계 “의무는 늘고 형사책임 완화는 제한적”

김태수 기자 | 입력 26-06-07 15:40



국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 안에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사고 발생 시 설명의무 강화,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자동조정 개시 확대 등 의료인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크게 늘어난 반면 형사책임 완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지난 5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40차 춘계통합학술대회에서 “의료분쟁방지법의 국회 통과에 따른 향후의 발전적 논의”를 주제로 정책세션을 진행했다. 이날 세션에서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의 취지와 한계, 하위법령 마련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쟁점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은 “환자 권리 보장과 필수의료진 보호라는 목표로 출발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면서도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을 환자 권리 보장 강화, 조정·감정제도 개편, 공적 배상체계 구축,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 형사절차 특례 도입 등 5가지로 정리했다. 이 가운데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으로는 중대과실 기준을 꼽았다.

그는 “현재 법률에 규정된 중대과실 조항 가운데는 해석의 여지가 큰 문구가 적지 않다”며 “환자를 전원하지 않은 경우,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등은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이 존재하는데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공의와 보조인력에 대한 지도·감독 문제도 향후 쟁점으로 거론됐다. 정 위원장은 “최근 진료지원 간호사 등과 협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도·감독 책임이 법적 분쟁의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현장 현실과 괴리된 조항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그는 “일부 병원에서는 공급 부족 등의 이유로 캐뉼라 등을 재소독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향후 이러한 부분이 중대과실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규정은 오히려 필수의료 현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설명의무 강화도 부담으로 지목됐다. 개정안은 의료사고를 인지한 날로부터 7일 이내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인지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모호하다”며 “어떤 시점을 사고 인지 시점으로 볼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설명의무가 형사특례 적용 여부와 연결되면 의료 현장은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형사특례제도 역시 의료계를 충분히 보호하는 장치가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 위원장은 “중대과실이 없어야 하고 설명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책임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며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반의사불벌 특례나 공소제기 제한, 형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계에서는 결국 면책을 돈을 주고 사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우려까지 나온다”며 “보호는 재량적이지만 의무는 확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자동조정 개시 확대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정 위원장은 “흉부외과의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진료를 고위험 필수의료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그러나 고위험 필수의료로 지정되는 순간 자동조정 개시 대상이 되기 때문에 또 다른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필수의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필수의료 종사자에게 새로운 규제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임보험 의무화에 따른 비용 문제도 제기됐다. 그는 “보험료 수준과 국가 지원 규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고위험 수술을 많이 하는 진료과의 경우 보험료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필수의료를 유지할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전문성 확보 필요성도 언급됐다. 정 위원장은 “위원회가 총 20명 규모인데 의사는 5명에 불과하다”며 “흉부외과처럼 전문성이 높은 영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충분히 심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단체는 의사가 많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의료계는 전문의가 적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라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토론에서는 환자와 의료계 모두 법안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는 의료사고를 단순한 책임 규명 대상이 아니라 환자안전 사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시스템 구축과 피해 환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법안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제도 시행 자체에는 의미를 뒀다. 그는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필수의료 분야에서라도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받는 사례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법안에 찬성했다”며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실제 운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듬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도 “법은 이미 통과됐다”며 “이제는 통과된 법이 현장에서 잘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환자뿐 아니라 의료계도 제도 안착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설명의무 조항과 헌법상 진술거부권 간 충돌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위로·공감·유감 표명은 증거 사용이 제한되지만 의료사고 설명의무에 대해서는 별도의 증거 배제 규정이 없다”며 “향후 형사절차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와 충돌할 수 있는 만큼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의사회 강봉수 분쟁조정위원장은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의료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며 “현재 법은 형사처벌을 기본 구조로 두고 일부 특례를 부여하는 방식인데, 이것만으로 필수의료 붕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신현두 과장은 하위법령 마련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신 과장은 “중대과실 기준만 하더라도 환자단체는 범위가 좁다고 하고 의료계는 너무 넓다고 하는 등 입장 차이가 큰 상황”이라며 “법 시행 과정에서 제도가 현장에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도 충분히 준비하고 세부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은 환자 권리 보장과 필수의료 보호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내걸고 출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중대과실 기준, 설명의무 범위, 책임보험 비용, 자동조정 개시 대상, 심의위원회 전문성 등 풀어야 할 쟁점이 남아 있다. 향후 1년 동안 마련될 시행령과 하위법령이 법안의 실제 작동 방식을 가르는 핵심 절차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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