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안정을 위해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생활물가와 환율, 주택시장 불안이 동시에 물가 압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을 물가 안정에 둬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신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한국은행 창립 제76주년 기념식에서 “성장, 물가, 금융안정 상황은 통화정책 측면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5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이후 들어온 경제 지표도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성장과 물가, 금융안정 사이의 상충이 크지 않은 만큼 통화정책이 물가 대응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신 총재가 특히 우려한 부분은 생활물가다. 그는 생활물가 오름세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으며, 이런 흐름이 가계의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가 높게 유지되면 실제 물가보다 더 강한 인플레이션 심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물가상승률에 대해서도 경계감을 드러냈다. 신 총재는 공급 충격의 파급 영향과 수요 측 물가 압력 확대가 겹치면서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수 있다고 봤다. 저소득층일수록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의 부담을 더 크게 느끼는 만큼 선제적인 물가 안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이 기업과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다만 신 총재는 이 부담을 통화정책으로 모두 흡수하기보다 재정정책을 통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기준금리 대응과 취약계층 지원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산시장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신 총재는 수도권 주택시장의 높은 오름세와 추가 상승 기대를 지적했다. 부동산 등 비생산적 자산으로 자금이 쏠리기보다 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이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과도한 차입을 활용한 투자는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고했다.
외환시장도 물가 흐름의 변수로 꼽았다. 중동 사태 등 대외 불안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경우 수입물가가 오르고, 이는 국내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원유와 원자재, 식료품 수입 가격이 환율을 통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짚은 발언이다.
신 총재는 외환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결제시스템 구축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역외 선물환 거래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 원화 시장의 기반을 넓히려는 조치다.
국내 경제에 대해서는 반도체 경기 호조와 내수 회복을 바탕으로 견조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다만 정보기술 부문 의존도가 높아 부문 간 격차가 남아 있는 만큼 양극화 완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 총재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 등으로 세계 경제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미래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념사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이 금리 인상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물가와 환율, 자산시장 불안이 동시에 남아 있는 만큼, 다음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실제 인상 시점과 폭을 어떻게 정할지가 시장의 핵심 관심사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