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진원지로 지목된 'VIP 격노설'의 실체에 대한 수사가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특별검사팀 조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화를 내는 것을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관련자들이 전면 부인으로 일관해 온 '침묵의 둑'에 첫 균열이 생긴 것으로, 윤 전 대통령을 향한 특검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11일) 이명현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약 7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김 전 차장은 문제의 2023년 7월 31일 대통령 주재 회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같이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회의에서 격노는 없었다"던 기존의 국회 증언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수사 외압의 시작점으로 의심받는 안보실 회의에 참석했던 최고위급 참모가 수사기관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VIP 격노설'은 윤 전 대통령이 당시 회의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며 격노했다는 의혹이다. 특검은 이 격노가 이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 등 조직적인 수사 외압으로 이어진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김 전 차장의 이번 진술은 특검이 'VIP 격노설'의 실체를 입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검은 김 전 차장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회의에 함께 참석했던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 다른 참석자들을 차례로 소환해,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구체적으로 어떤 외압 지시로 이어졌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특검은 김 전 차장을 소환한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택과 조태용 전 실장, 임종득 전 안보실 2차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 10여 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자택 압수수색에서는 당시 사용했던 휴대전화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통화 내역 등 객관적인 물증을 통한 의혹 규명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윤 전 대통령의 재구속으로 수사의 동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특검이, 이제는 최측근 참모의 '결정적 진술'까지 확보하면서 수사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김 전 차장의 진술 번복이 '윗선'을 향한 다른 관련자들의 연쇄적인 진술 변화를 이끌어 낼지, 법조계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