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증시가 연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어제(23일) 장중 3900선을 처음 터치했던 코스피 지수는 오늘(24일) 3905선을 돌파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러한 파죽지세의 랠리는 "K-주식"의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돌아온 외국인 투자자들의 '폭풍 매수'가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증권사의 분석에 따르면, 9월 이후 한국 증시는 주요 10개 신흥국 중 외국인 순매수 1위 시장으로 등극하며 글로벌 투자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의 분위기는 180도 역전됐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10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조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자금을 회수해 갔다. 하지만 9월을 기점으로 흐름은 완벽하게 반전됐다. 9월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92억 달러, 약 13조 원 규모에 달한다. 이는 분석 대상 10개 신흥국 중 단연 1위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규모다.
다른 경쟁국들과 비교하면 한국 시장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외국인 순매수가 유입된 곳은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대만 증시가 유일했으나, 그 규모는 54억 달러로 한국에 유입된 자금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반면 일본 증시에서는 20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으며, 미국발 관세 여파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베트남과 인도 증시 역시 자금 유출을 피하지 못했다.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쓸어 담은 종목은 명확했다. 올해 국내 증시는 상반기 "조방원"(조선·방산·원전)이 이끌고 하반기는 "반바지"(반도체·바이오·2차전지)가 주도한다는 흐름이 현실로 확인됐다. 9월 이후 유입된 13조 원의 외국인 자금 중, 약 10조 원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 매입에 집중됐다. 사실상 외국인이 한국 증시의 간판인 반도체주를 집중 공략하며 지수 전체를 끌어올린 셈이다.
이러한 "바이 코리아" 행진의 근본적인 이유는 K-주식, 특히 반도체 중심의 기술주가 가치에 비해 극도로 저평가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도 순이익 전망치를 기준으로 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1.4배, 2.2배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글로벌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의 PBR이 3배를 넘고, 부실화 우려로 미국 정부의 자금까지 투입된 인텔의 PBR이 1.5배인 것과 비교하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K-반도체가 여전히 "싸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외국인의 강력한 매수세에 힘입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 규모는 총 1,014조 6천억 원으로, 한 달 만에 11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시가총액 중 외국인 보유 비중 역시 29%에 육박하며,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던 2023년 9월(26%)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인공지능(AI)발 D램 부족 사태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고, 자사주 소각 등을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이 연내 추진될 것으로 보여, 외국인과 연기금이 주도하는 K-주식 랠리의 기대감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