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은 정부 및 여당이 추진 중인 한의사 엑스레이(X-ray) 사용 허용 방안에 대해 보다 균형 있는 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진료 접근성과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다.
정부는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권한을 포함해 검체검사 위·수탁 방식 개편, 그리고 의약품 ‘성분명 처방’ 확대 등을 의료제도 개편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은 이 같은 추진안을 ‘의약분업 원칙’ 및 면허 체계의 근본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대응했다.
그러나 한의계는 이와 달리, 환자의 한방 의료 이용 선택권을 존중하고, 동네 한의원에서 보다 원활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의협 관계자는 “한방진료의 특성상 영상검사 및 기초검사를 보다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진료의 질과 환자 만족도 모두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의계는 의료기술의 경계가 과거보다 흐려지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첨단 영상진단 장비와 디지털 헬스케어가 보편화되면서, 기존의 면허 구분 방식이나 업무 범위 설정이 현실 의료현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의협은 “제도적 허들이 너무 높으면 지역에서 한방 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가 불필요하게 대형병원으로 이동하거나, 진료 서비스 이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영상검사의 안전성과 전문가 판독, 방사선관리 등은 중요한 논점이다. 한의협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경우, 관련 교육과 인증제도를 통해 안전장치를 확실히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한의사 대상 영상검사 교육 프로그램을 정부-한의계 공동으로 설계하겠다”는 제안이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또한 한의협은 “이번 기회를 통해 한의사 진료 영역 확대만이 아니라, 환자 중심 의료체계로의 전환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한방과 양방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상호보완 체계를 구축하고, 환자가 자신의 진료 경로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의계는 엑스레이 허용을 단순한 진료권 확대 논쟁으로 보지 않는다. “한의사들에게 영상검사 접근권을 부여하는 것은 한방진료의 과학화·표준화로 가는 초석”이라는 해석이다. 영상진단을 포함한 통합진료 체계를 확보하면, 한의진료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제고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결국 국민의 의료 이용 편의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제도 변화가 의료현장에서 혼선을 빚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도 한의계는 함께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영상판독 전문의와의 협업체계, 진료기록 연계 시스템, 검사비·급여 체계 정비 등이 그것이다. 한의협 내부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프레임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한의계가 책임감 있는 참여자로서 제도 설계 논의 테이블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제도 개편 논의는 단순히 직역 간 권한 싸움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환자의 진료 접근성, 지역 의원·한의원 수준 진료역량, 의료비 효율성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한의계는 이 과정에서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이라는 사안이 오히려 합리적 제도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원급 한방진료기관 다수가 대형병원 및 양방 중진료 기관에 비해 장비·인력 여건이 열악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한의계는 “정부와 국회가 이 제도를 단순 권한 확대가 아니라 의료진료 인프라 전반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현장에서는 이같은 한의계의 제안이 얼마나 수용될지 주목되고 있다. 직역 간 갈등으로 비화된 사안이지만, 양방과 한방 모두가 ‘환자 중심 의료’라는 목표 아래 지혜롭게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정부와 여당은 제도개편 논의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연내 입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 전체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의계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