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12.3 사태를 단순한 정치적 소요가 아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내란으로 규정함에 따라 당시 국방 행정의 수장이었던 김용현 전 장관을 향한 법적 단죄의 수위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최근 선고된 관련 사건의 1심 판결문은 이번 사태가 치밀한 사전 기획 하에 실행되었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김 전 장관이 있었음을 방대한 분량의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진관 부장판사가 이끄는 재판부는 판결문 본문에서 김 전 장관의 실명을 무려 145회에 걸쳐 언급하며 그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했다. 이는 피고인이 내란의 가담자를 넘어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실행의 핵심 동력이었음을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12.3 내란의 주범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을 나란히 지목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사전에 긴밀한 모의를 거쳐 국회와 주요 국가 기관을 무력으로 봉쇄하고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및 단수 조치를 계획하는 등 헌법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수립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가 비상입법기구 구성을 염두에 둔 예산 편성 지시 등 각 부처 장관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김 전 장관이 미리 준비했다는 점은 이번 사태가 우발적인 결정이 아닌 체계적인 반국가적 범죄였음을 시사한다. 단순한 명령 수행의 차원을 넘어 국가 기구 전반을 장악하려 한 정황이 사법부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진 것이다.
김 전 장관의 구체적인 행적은 계엄 선포를 전후한 시점에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에 소집된 국무위원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는 "대통령이 깊은 고뇌에 찬 결단을 한 것이니 그 뜻을 따라주면 좋겠다"라는 발언을 통해 내란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시도했다. 또한 국무회의 의결 과정에서 의사 정족수가 부족할 것을 우려해 직접 인원수를 확인하며 현장을 지휘한 정황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이상민 장관과 함께 손가락으로 숫자 "4" 또는 "1"을 표시하며 국무회의 성립을 위해 필요한 인원수를 공유하고 챙긴 행위를 내란 실행을 위한 적극적인 가담의 증거로 보았다. 이는 김 전 장관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진행될 김 전 장관 본인의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내란 방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상황에서 내란의 주체로 명시된 김 전 장관의 형량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신군부 내란 사건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1심 형량을 넘어설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비록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부를 법적으로 직접 구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사건 구조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내란 본류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 역시 이진관 재판부의 엄중한 판단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법부가 김 전 장관을 내란의 2인자이자 설계자로 명확히 규명함에 따라 그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판결문 곳곳에 담긴 그의 치밀한 가담 정황과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까지 직접 챙기는 집요함은 단순한 공직자의 임무 수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일관된 시각이다. 헌정 질서를 유린한 행위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김 전 장관의 이름이 언급된 145번의 기록만큼이나 무겁게 지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방부 장관이 오히려 내란의 선봉에 섰다는 사실은 향후 역사적 심판대 위에서도 뼈아픈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