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 정신이 살아 숨 쉬던 영남의 유서 깊은 고택이 한순간의 불길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했다. 24일 오전 10시 25분경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위치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8호 "금양정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로 5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목조 건물 1채가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불길이 인근 야산으로 번지면서 소중한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에 큰 피해를 남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과 산림 당국은 헬기 11대와 소방차 등 장비 20여 대, 인력 120여 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건물이 불에 타기 쉬운 목조 구조인 데다, 화재 현장이 산자락에 위치해 진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초기 진압에 난항을 겪었다. 불은 발생 1시간 40여 분 만인 낮 12시 8분경 주불이 잡혔으나, 건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소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피해는 문화재에만 그치지 않았다. 고택에서 시작된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인근 야산으로 옮겨붙으면서 임야 0.05헥타르가 소실되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주 건물 옆에 위치한 관리동 일부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그을리는 등 피해를 보았다. 산림 당국은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잔불 정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인근 민가로의 피해 여부를 정밀 확인하고 있다.
화재로 사라진 금양정사는 조선 중기 문신이자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꼽히는 금계(錦溪) 황준량(1517~1563)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정사다. 1563년 완공된 이후 영남 사림의 중요한 교육 거점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스승인 퇴계 이황이 직접 "금양정사"라는 이름을 짓고 보존을 당부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곳이다. 특히 이곳은 16세기 정사 건축의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영주시와 경상북도는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재가 전소되었다는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주시 관계자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소실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소방 당국의 정밀 감식 결과가 나오는 대로 경북도와 협의하여 복원 가능성 및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를 이어 고택을 관리해 온 후손들 또한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한 비통함을 전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과 구체적인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현장 감식을 통해 발화 지점과 전기 누전 여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 사고는 목조 문화재가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겨울철 건조한 날씨 속 문화재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