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재판과 행정 업무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조직 개편에 나섰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내 AI 정책을 총괄하고 전담할 "사법인공지능심의관" 보직을 신설하며 미래형 사법 서비스 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조치는 급변하는 IT 환경에 대응하고 재판의 효율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사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개최된 올해 첫 대법관회의에서 "법원사무기구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의 핵심은 법원행정처 사법정보화실 산하에 사법인공지능심의관직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정보화기획심의관이 담당하던 업무 중 AI와 관련된 전문적인 사안들을 분리하여 신설된 심의관이 전담하게 된다. 사법인공지능심의관은 사법정보화실장을 보좌하며 사법부의 전반적인 AI 정책 수립과 시행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신설된 심의관의 주요 업무 범위는 AI와 빅데이터 등 지능정보기술의 사법 분야 접목에 집중된다. 특히 재판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법행정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AI 기술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도입을 넘어 법률 해석의 보조 도구 활용, 판결문 데이터의 효율적 분석, 그리고 대국민 사법 서비스의 접근성 향상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한다. 사법부는 이를 통해 법관의 업무 부담을 경감하고 더욱 신속하고 정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조직 개편은 사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디지털 혁신의 연장선에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4월 처장 자문기구인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위원회는 그동안 재판 업무의 질적 향상을 위한 AI 활용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왔으며, 지난달에는 "인간 중심 AI를 통한 사법정의 구현"이라는 비전 아래 2030년까지의 단계별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보직 신설은 이러한 로드맵을 실질적으로 실행할 컨트롤 타워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사법부가 제시한 AI 로드맵에 따르면, 올해는 사법부 내 AI 활용을 위한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이후 2028년까지는 방대한 재판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데이터의 품질을 고도화하여 실질적인 AI 시스템을 구현 및 확산시키는 단계에 진입한다. 최종적으로 2030년까지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고도화하여 사법 업무 전반에 AI 활용을 완전히 안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쟁점이나 기술적 오류에 대한 검증 역시 사법인공지능심의관의 중요한 직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AI 전담 보직 신설을 반기는 분위기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사법 행정 체계를 유연하게 변경하는 것은 사법부의 현대화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판결의 일관성 유지와 법률 정보 탐색 시간 단축 등 AI가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다. 다만 기술 도입 과정에서 인간 법관의 판단 영역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설정과 개인정보 보호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요구된다.
결국 사법부의 AI 전환은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안정성에 달려 있다. 사법인공지능심의관 신설은 사법부가 기술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민들에게 보다 수준 높은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선언적 의미와 실무적 준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향후 AI 기술이 실제 법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