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퇴장을 바라보며...
정치인의 죽음이 시대의 한 장을 덮는 순간으로 남는 경우는 드물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그러나 단순한 부고를 넘어, 한국 정치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는 늘 전면에 서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박수와 환호의 중심보다, 구조와 판의 중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해찬의 정치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계산의 언어였고, 즉흥의 정치가 아니라 축적의 정치였다. 그래서 그는 종종 차갑고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한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내공 있는 정치인’으로 남았다.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정치에 입문해 국무총리와 당 대표, 그리고 여당의 정신적 축으로까지 이어진 그의 행보는 한국 현대 정치사와 겹쳐 있다. 그는 정치를 낭만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권력은 설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정당은 감정의 집합체가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흔히 ‘킹메이커’로 불렸다. 그러나 그 표현은 절반만 맞다. 그는 사람을 세운 것이 아니라,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세우려 했던 인물에 더 가깝다. 선거보다 이후를 보았고, 정권보다 구조를 고민했다. 그 점에서 그는 대중정치의 시대에 드문 ‘관리형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의 정치가 늘 공감과 환영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한 어조와 직설적인 화법, 타협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태도는 때로 시대의 정서와 충돌했다. 그러나 정치가 모두 온화하고 가벼울 수만은 없다. 누군가는 욕을 먹더라도 버티고 정리해야 한다. 그는 그 역할을 피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는다.
요즘 정치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무게감 있는 침묵’, 말보다 판을 먼저 읽는 시선, 그리고 긴 호흡의 정치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는 결국 사람으로 남는다.
법안의 숫자보다, 직함의 무게보다, 한 정치인이 보여준 태도와 책임의 방식이 오래 기억된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한국 정치에 “정치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몸으로 남겼다.
그가 떠난 지금, 남은 정치가 더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무거워져야 한다. 그것이 한 시대를 버텨낸 정치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삼가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