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발생한 60조 원 규모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를 계기로 중앙화 거래소의 이른바 '장부 거래' 시스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거래소가 실제 보유한 물량보다 12배 이상 많은 가상의 코인이 전산상에서 생성되고 실제 매매까지 이뤄지는 과정이 목격되면서다.
8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빗썸을 포함한 대다수 중앙화 거래소(CEX)는 고객의 코인을 자체 지갑에 보관하고, 내부 매매 시 블록체인에 매번 기록하는 대신 데이터베이스(DB)상의 숫자만 변경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번 사고는 지난 6일 오후 7시경 이벤트 당첨금 지급 과정에서 담당자가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으로 입력하며 터졌다. 62만 원을 주려다 62만 개의 비트코인(당시 시세 약 60조 7,600억 원)을 장부상에 생성해 고객들에게 배분한 셈이다.
사고 직후 빗썸 모바일 화면에 표시된 비트코인 유통량은 평소 4만 6,000개 수준에서 66만 개를 넘어섰다. 이는 전 세계 비트코인 총 발행량의 약 3%에 달하는 수치다. 일부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계좌에 찍힌 수천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즉각 시장가로 매도했고, 이 과정에서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은 1억 원 선에서 8,111만 원까지 급락하는 등 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현장에서 사태를 지켜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돈 복사' 논란이 거세다. 거래소가 마음만 먹으면 실제 보유량과 상관없이 가상의 자산을 만들어 유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특히 빗썸이 공시한 실보유량보다 14배나 많은 자산이 전산상에서 아무런 제어 없이 정상 자산으로 인식되어 거래된 점은 리스크 관리 체계의 심각한 결함으로 지적된다.
빗썸은 사고 발생 35분 만에 거래와 출금을 차단하고 오지급된 물량의 99.7%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거래소 측은 "고객 화면에 표시된 수량과 실제 보관 수량은 엄격한 회계 관리를 통해 100%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정작 사고 당시에는 이 검증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안을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를 흔드는 중대 사고로 규정하고 즉각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7일 긴급 대응회의를 열고 빗썸의 내부 통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당국은 특히 거래소가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와 유사한 행태를 시스템적으로 방치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도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현재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안에 코인 유통량 관리와 실시간 잔고 검증 의무화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역시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 훼손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앙화 거래소에서 장부 거래 자체는 효율성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보유 자산을 초과하는 입출력에 대한 기본적인 필터링조차 없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이번 사태로 인해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제도권 수준의 내부 통제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원의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엔 60조 원이라는 금액과 시장 파급 효과가 너무 컸다. 이번 사고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디지털 금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남겼다.
실제 자산과 장부상 수량의 괴리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강제적 기술 표준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제2의 유령 코인 사태 재발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