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위험 임산부와 신생아,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모자의료체계와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개편한다. 권역별 모자의료 네트워크를 전국으로 넓히고, 응급환자 이송 과정에서 병원 수용 여부를 조정하는 광역 대응 체계도 강화한다.
보건복지부는 26일 국무회의에 "고위험 임산부·신생아 및 응급 의료체계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고령 임신과 조산 증가로 고위험 분만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전문인력 부족과 지역 의료 공백으로 응급 산모가 병원을 찾지 못하거나 신생아 치료가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된 데 따른 조치다.
복지부는 전국 어디서나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전원·이송체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진이 고위험 진료를 기피하지 않도록 의료사고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우선 권역 모자의료센터 중심 협력체계를 전국으로 확대한다. 현재 9개 권역에서 운영 중인 모자의료 진료협력 시범사업을 충청권, 전북권, 제주권까지 넓혀 연내 전국 단위 네트워크를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권역 내 상급종합병원과 분만병원이 연계돼 고위험 임산부와 신생아를 최대한 지역 안에서 치료하도록 한다.
전원체계도 보강된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모자의료센터 전원전담팀 인력을 기존 5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오는 6월 모자의료 정보시스템을 개통한다. 이 시스템이 가동되면 여러 병원에 동시에 전원 요청을 할 수 있어 병상을 찾는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이송체계도 바뀐다. 응급 분만 산모가 병원 간 전원될 경우 119구급차를 우선 활용하고, 장거리 이송이 필요한 경우 닥터헬기와 소방·군 헬기를 함께 활용한다. 임산부가 119에 신고하면 우선 기존에 다니던 병원으로 이송하고, 수용이 어려울 경우 권역 모자의료센터 네트워크를 즉시 가동하는 방식이다.
지역 안에서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중앙모자의료센터와 중앙119구급상황센터가 함께 병상을 찾는다. 응급 산모가 여러 병원에서 수용 거부를 겪는 일을 줄이기 위해 이송 단계부터 병상 배정까지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서울에만 있는 중증 모자의료센터도 전국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에 각각 1곳씩 추가 지정해 단계적으로 전국 6개소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증 모자의료센터는 다학제 진료가 필요한 최중증 산모와 신생아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비수도권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비수도권 권역센터를 대상으로 성과 기반 사후보상을 도입하고, 은퇴 의사를 채용할 경우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국립대병원 산과 전임교원 증원도 추진한다. 지역 분만병원 전문의가 권역센터 당직이나 파트타임 근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력 기준도 완화한다.
응급환자 이송체계도 전국 단위로 손질한다. 정부는 광주·전라권에서 시범 운영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모델을 올 3분기 안에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모델은 지역 응급의료기관 사이에 환자 수용 원칙을 미리 정하고, 이송이 막히면 광역상황실이 즉시 개입하는 구조다.
각 시·도는 지역 의료자원과 특성을 반영한 이송지침을 마련한다. 정부는 전국 6개 광역상황실을 통해 지역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응급환자의 지역 간 이송도 지원한다. 응급실을 전전하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 현장 구급대와 병원, 광역상황실의 판단 체계를 한데 묶는 방식이다.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는 대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분만 의료진 대상 고액 배상보험 지원을 오는 6월부터 응급실과 신생아중환자실 전문의까지 확대한다. 의료사고 발생 시 최대 17억 원까지 배상액을 보장받을 수 있다.
불가항력적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도 확대된다. 정부는 지난해 최대 보상액을 3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올린 데 이어, 오는 6월부터 산모 중증장애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해 최대 1억5000만 원을 보상할 계획이다.
내년 5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의료진의 형사부담도 일부 완화된다. 중대한 과실이 아닌 필수의료 사고의 경우 손해배상이 완료되면 기소를 제한하고, 기소되더라도 형 감면이나 면제가 가능해진다. 복지부 산하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형사사건을 사전에 심의하고, 심의 기간에는 수사기관의 의료인 출석 요구를 자제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정부 대책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응급의학회는 26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개선방안과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의 전국 조기 확대가 지역별 응급의료 특성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며 추진 방향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책은 고위험 분만과 응급의료를 별개로 보지 않고, 병상 정보와 이송, 전문인력, 의료진 보호 장치를 함께 묶은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제시한 네트워크와 상황실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권역별 병상 확보와 전문의 참여, 병원 간 수용 기준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