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가요 한 곡에는 가창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작사가와 작곡가, 편곡자 등 수많은 음악인의 시간이 담겨 있다. 특히 트로트계에서는 가수로 이름을 알린 음악인이 다른 가수의 노래를 만들거나, 작곡가의 작품이 새로운 가수를 만나 대표곡으로 자리 잡는 사례가 이어져 왔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모아 ‘남의 대표곡을 써준 가수’라는 제목의 콘텐츠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콘텐츠에 포함된 일부 설명과 순위는 공식적인 음악계 평가가 아니며, 사실관계 역시 곡별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훈아가 만든 ‘땡벌’…강진의 대표곡으로
강진이 부른 ‘땡벌’은 나훈아가 작사·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이 음원 정보에서 확인된다. 벅스의 곡 정보에도 보컬 강진, 작사·작곡 나훈아, 편곡 김기표로 등록돼 있다.
‘땡벌’은 이후 강진을 대표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나훈아의 음악적 색깔과 강진의 가창력이 만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례라는 점에서 한국 트로트계의 흥미로운 음악적 인연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온라인 이미지에 적힌 “나훈아가 돈을 받지 않고 강진에게 곡을 줬다”는 일화는 곡의 공식 작사·작곡 정보와는 별개의 주장이다. 당사자의 신뢰할 만한 인터뷰나 공식 자료를 통해 추가 확인해야 할 부분인 만큼 사실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김혜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전국을 누빈 대표 히트곡
김혜연에게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 빼놓을 수 없는 대표곡이다. 김혜연은 1993년 데뷔했으며 연합뉴스 역시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그의 대표곡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노래의 작곡가는 정의송으로 알려져 있다. 곡 제목에 서울·대전·대구·부산이라는 주요 도시가 등장하면서 대중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고, 김혜연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노래 가운데 하나가 됐다.
다만 온라인 콘텐츠에 등장하는 “1994년 전국을 흔든 히트곡”과 같은 표현은 객관적인 차트 성적이나 판매량 등 구체적인 기준과 함께 제시할 때 보다 정확한 평가가 될 수 있다.
이호섭이 작곡한 ‘다함께 차차차’…설운도의 대표곡
설운도의 대표곡으로 널리 알려진 ‘다함께 차차차’는 김병걸이 작사하고 이호섭이 작곡한 작품이다. 음원 정보에서도 보컬 설운도, 작사 김병걸, 작곡 이호섭으로 확인된다.
경쾌한 리듬과 따라 부르기 쉬운 구성이 특징인 이 곡은 오랜 기간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설운도를 상징하는 트로트 곡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온라인 이미지에 소개된 ‘이호섭이 설운도에게 다함께 차차차를 만들어줬다’는 핵심적인 작곡 관계는 확인되는 내용이다. 다만 “사흘 만에 써서 대박을 냈다”는 제작 일화는 작곡자 정보와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영탁이 참여한 장민호 ‘읽씹 안읽씹’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장민호의 ‘읽씹 안읽씹’이 있다.
2020년 6월 발표된 이 곡은 영탁과 지광민이 공동으로 작사·작곡하고 편곡에도 참여한 댄스 트로트곡이다. 공식 음원 제공 정보에서도 영탁과 지광민이 작사·작곡자로 확인된다.
SBS와 iMBC 보도에서도 ‘읽씹 안읽씹’은 영탁과 지광민이 함께 만든 곡으로 소개됐다. 특히 영탁은 방송에서 문자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거나 아예 읽지 않는 상황을 소재로 곡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영탁 혼자 작곡한 노래’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영탁·지광민 공동 작사·작곡 작품’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온라인 ‘순위 콘텐츠’, 사실과 재미 구분해야
이번 사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인터넷과 SNS에서 유통되는 음악 관련 순위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남의 대표곡을 써준 가수 5명’, ‘최고의 작곡가 출신 가수’ 등의 순위는 흥미를 끌 수 있지만, 별도의 조사기관이나 음원 판매량·방송 횟수·차트 성적 등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면 공식 순위로 볼 수 없다.
특히 ‘돈을 받지 않았다’, ‘며칠 만에 만들었다’, ‘이 노래 한 곡으로 스타가 됐다’ 등의 뒷이야기는 사실 여부에 따라 기사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언론 보도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일수록 원곡자와 작사·작곡자, 최초 발표 시기, 음원 등록 정보 등을 먼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좋은 노래는 작곡가의 손에서 태어나지만, 그것을 시대의 노래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가수와 대중이다.
나훈아와 강진, 이호섭과 설운도, 영탁·지광민과 장민호의 사례처럼 한 음악인의 창작물이 또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과정은 한국 대중음악이 이어져 온 중요한 방식 가운데 하나다.
누가 만들었느냐와 누가 불렀느냐를 넘어, 좋은 노래가 세대를 건너 다시 불리는 것. 그것이 바로 대중가요가 가진 가장 강력한 생명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