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지시하며 수습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외교부와 통일부의 합동 업무보고에서 현재의 남북 대치 상황을 "불필요한 강대강 정책이 낳은 증오의 결과"로 규정했다. 취임 7개월을 맞이한 시점에서 나온 이번 발언은 남북 간의 적대적 기류를 완화하고 평화 공존을 위한 신뢰 회복에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과거의 남북 관계가 형식적인 적대 관계였다면, 현재는 "진짜 원수가 되어가는 위험한 단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1950년 전쟁 이후 반세기 넘게 대치가 지속됐으나, 지금처럼 3중 철책을 치고 다리를 스스로 끊어내는 극단적인 물리적 단절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며 우려를 표했다.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이 정략적 목적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할 시점임을 명확히 했다.
남북 간의 인식 차이에 대해서도 냉철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은 과거 우리 사회가 북한의 남침 위협만을 교육받아 왔으나, 현실적으로는 북한 역시 남측의 북침을 두려워해 방벽을 쌓고 철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각자의 방어적 조치를 공격적 도발로 오인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 또한 이러한 공포의 발로일 수 있다고 언급하며,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통일부가 앞장서서 이 바늘구멍 같은 단절의 벽을 뚫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보에 대한 개념 재정의도 이루어졌다. 이 대통령은 물리적인 군사력 증강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안보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외교적 노력이 평화 유지의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하며, 남북 간에도 인내심을 바탕으로 선제적이고 주도적인 신뢰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적대적 대결보다는 실용적 평화 관리를 통해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외교 부문에서는 경제와 안보의 결합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국제 질서 재편기에 외교의 역할이 국가 경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들어, 외교부가 경제 영토 확장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고 지시했다. 특히 재외공관이 우리 기업의 수출을 돕고 현지 시장 진출을 견인하는 "경제 첨병"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조직의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주문했다.
공적개발원조(ODA) 정책과 관련해서는 양적 확대에 매몰되지 않는 질적 혁신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단순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 한국의 문화적 진출과 경제적 이익이 수혜국의 필요와 조화를 이루는 "전략적 원조"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부처의 ODA 사업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효율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업무보고는 이재명 정부가 향후 남북 관계와 대외 외교에서 가질 방향성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증오의 정치를 걷어내고 실질적인 평화와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대통령의 구상이 경색된 남북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