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 평균 1,490원 선에 다가서며 외환위기 이후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동 전쟁 여파로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한 가운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매도세를 이어가며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2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7일까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평균 환율은 1,489.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직후 환율이 폭등했던 1997년 12월과 1998년 1·2월에 이어 월간 기준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외환위기 정점기였던 1998년 3월의 평균 환율(1,488.87원)마저 이미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거센 '셀 코리아(Sell Korea)'가 환율 상승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달 들어 외국인 투자자가 코스피 시장에서 쏟아낸 순매도 물량은 약 30조 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 기록이다. 주식을 판 자금을 달러로 바꿔 나가는 수요가 몰리면서 원화 약세를 부채질하는 구조다.
실제로 지난주 환율은 장중 한때 1,517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주간 평균 환율은 1,503.4원을 기록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1,500원 선을 뚫고 올라갔다. 이달 들어 뉴욕 종가 기준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4.72%로, 주요국 통화 중 하락세가 가장 가팔랐다.
서울 외환시장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딜링룸 전광판에 1,500원대 숫자가 찍힐 때마다 외환 딜러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고, 당국의 구두 개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반복됐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결제 수요와 손절 매수가 뒤섞이며 상단이 힘없이 뚫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는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외국인의 이탈을 막을 뚜렷한 유인책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올해 전체 평균 환율 역시 1,464.93원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1998년 1분기(1,596.88원) 이후 가장 높은 연평균 수준이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 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 증가를 호소하고 있으며, 수입 물가 상승이 국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와 환율 급등이 맞물리는 악순환이 고착화하면서 외환 시장의 변동성은 극에 달하고 있다. 향후 중동 사태의 전개 양상과 국내 증시의 외국인 자금 유출입 향방에 따라 환율이 1,500원대 중반까지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시장 내부에서는 당국의 실질적인 수급 대책 없이는 심리적 저항선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