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시장 전광판에는 붉은 숫자가 가득 찼다. 주말 사이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미국·이란 전쟁 참전을 공식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금융시장은 개장과 동시에 패닉에 빠졌다. 코스피는 장 초반 5% 넘게 폭락하며 5100선으로 밀려났고, 원·달러 환율은 다시 1510원을 돌파하며 외환 당국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2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6.90포인트(5.09%) 급락한 5161.97을 기록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파란불을 켰다. 삼성전자가 4.84% 하락하며 지수 하락을 견인했고, SK하이닉스는 6.07% 급락하며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자동차 대표주인 현대차(-5.96%)와 방산주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4.79%) 역시 거센 매도세를 피하지 못했다.
코스닥 시장의 충격도 비껴가지 않았다.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44.87포인트(3.93%) 내린 1096.64에 거래되며 심리적 지지선인 1100선을 내줬다. 개인 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은 시장 특성상 변동성이 커지자 장 초반부터 투매 물량이 쏟아지는 모습이 관측됐다.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약세 현상이 심화됐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5분 기준 전장보다 6.5원 오른 1515.4원에 거래 중이다. 개장 직후 1510원을 가볍게 넘어선 환율은 상승 폭을 키우며 수입 물가 상승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환율 상단이 열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시장을 뒤흔든 결정적 원인은 유가 급등이다. 후티 반군의 참전 선언으로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원유 수송로의 봉쇄 우려가 커지자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브렌트유 5월물 선물은 배럴당 115달러를 돌파했으며,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3% 이상 급등해 102달러 선을 넘어섰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것이라는 우려가 증시를 압박하는 구조다.
한국은행과 정부 당국은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긴급 점검에 나섰다. 유가 상승이 국내 물가와 경상수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커진 만큼 에너지 수급 대책과 시장 안정화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주도형 산업의 비용 부담 증가가 실적 악화로 이어질지 여부가 향후 증시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유가 120달러 선 돌파 여부와 미국의 추가 개입 수위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할지 여부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