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봉쇄된 글로벌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기 위해 파키스탄에 모인 이슬람권 4개국이 파격적인 중재안을 내놨다. 이란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으로부터 이른바 '안전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을 용인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전쟁 종식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국제 공해상에 대한 이란의 실효적 지배권과 수익권을 인정하는 제안이어서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과 논란이 예상된다.
29일(현지 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회동한 파키스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외교 수장들은 꽉 막힌 호르무즈 해협을 뚫기 위한 핵심 해법으로 이란의 '통행료 징수 법안' 수용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란 의회가 검토 중인 이 법안은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통행료를 받는 내용이 골자다. 중재국들은 이를 통해 이란에 경제적 명분을 제공하고 에너지 공급망을 복원하겠다는 '빅딜'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이란 의회가 검토 중인 통행료는 유조선 한 척당 약 30억 원(약 220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징수된 자금을 전쟁 피해 복구와 지역 안정 기금으로 활용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중재 4개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구체적인 제안서를 이미 미국 백악관에 전달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용 여부를 타진 중이다.
이란은 이번 중재안에 화답하듯 파키스탄 국적 유조선 20척의 '시범적 통행'을 전격 허용했다. 이는 통행료 협상을 위한 사전 조치이자, 중재국의 체면을 세워주며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협상이 잘 진행 중이며 타결이 임박했다"고 밝히며 유조선 통과 소식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천연 해협인 호르무즈를 인공 운하처럼 유료화하는 것은 국제법상 유례가 없는 일이며, 전 세계 해상 물류에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접 걸프 국가들과 해운 업계는 "공해상 통행료 징수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척당 3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결국 소비자 물가 폭등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중재안이 총칼 대신 경제적 카드로 전쟁을 멈추려는 고육책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란의 자금줄을 공식적으로 열어주는 '위험한 거래'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공화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이란에 대한 굴복이라며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실제 이행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운명이 걸린 이번 '통행료 빅딜'이 실제 종전 합의문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결정은 향후 국제 해상 통행 원칙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