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을 덮친 대규모 홍수로 사망자가 800명에 육박한 가운데 당국이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희생자들의 시신을 임시 매장하기 시작했다. 시신이 대거 발견되면서 병원과 영안실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이른 데다 부패가 빠르게 진행돼 공중보건 문제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네팔 정부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발생한 보테코시강 일대의 대규모 홍수 이후 수백 구의 시신과 유해가 하류 지역에서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네팔 정부가 30일 발표한 공식 집계에서는 시신과 유해 734구가 수습됐고 2498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였다. 이후 네팔과 중국 티베트 지역의 피해까지 합산한 외신 집계에서는 사망자가 800명 안팎으로 늘었다.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피해 규모는 추가로 변할 수 있다.
특히 홍수 발생 지역에서 수십∼수백㎞ 떨어진 하류까지 시신이 떠내려가면서 신원 확인 작업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물과 진흙 속에 장시간 노출된 일부 시신은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거나 부패한 상태다.
피해가 집중된 치트완 지역에서는 병원과 임시 안치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바라트푸르 병원은 한꺼번에 밀려드는 시신을 보관할 냉동시설이 부족해 법의학팀을 투입해 신원 확인과 부검 작업을 이어왔다.
결국 현지 당국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시신을 임시 매장하기로 결정했다.
매장 장소로는 치트완 지역 바라트푸르의 데브가트 일대가 지정됐다. 평소 주민들이 산책하던 숲과 공터에 굴착기가 투입됐고 수백 개의 임시 묘지가 만들어졌다.
현지 당국은 시신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악취와 감염 등 공중보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더 이상 보관만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가네시 아리아 치트완 지역 당국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빠르게 부패하는 시신이 공중보건에 미칠 위험을 고려해 임시 매장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원 확인 가능성을 남기기 위한 절차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당국은 매장에 앞서 모든 시신에서 DNA 시료를 채취하고 사진과 신체 특징, 부검 결과 등을 기록하고 있다. 각각의 시신에는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한다.
매장 위치도 정확하게 기록한다. 지상과 지하에 식별 표식을 설치하고 묘지의 위치 정보와 관련 자료를 보관해 향후 가족의 DNA와 일치할 경우 해당 유해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신원이 확인되면 가족이 유해를 인도받아 종교와 전통에 따른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네팔 정부의 방침이다.
임시 매장을 둘러싼 논란도 발생했다. 힌두교 문화권인 네팔에서는 화장이 일반적인 장례 방식이어서 신원 확인이 끝나지 않은 희생자를 매장하는 데 대한 반발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임시 영안시설을 추가로 설치해 신원 확인 작업을 더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국은 이번 조치가 영구적인 집단매장이 아니라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시신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임시 조치라고 설명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임시 신원확인센터를 찾아 사진과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수습된 시신 가운데 상당수가 심하게 훼손돼 얼굴이나 연령, 신체 특징만으로 가족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네팔 정부는 해외 전문가들의 지원도 받고 있다. 인도에서 DNA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법의학 전문가들이 현지에 도착했고 중국 등과도 신원 확인을 위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수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팔 정부는 약 1만9000명의 보안 인력과 16대의 헬기를 피해 지역에 투입했으며 산악지역과 터널 등에 고립된 주민과 실종자를 찾고 있다. 도로와 교량이 끊긴 지역이 많아 구조대의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재난은 26일 히말라야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와 빙하 붕괴에 따른 급류가 보테코시강과 주변 지역을 덮치면서 시작됐다. 마을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시설 등이 순식간에 휩쓸렸고 급류에 떠밀린 희생자들이 사고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하류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네팔 정부가 신원 미상 희생자들의 DNA와 매장 위치를 남기는 것은 재난 수습의 끝이 아니라 장기간 이어질 신원 확인 작업의 시작에 가깝다. 아직 수천명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임시로 묻힌 유해가 누구인지 밝혀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작업이 이번 참사의 또 다른 과제로 남았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