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태 감독이 이끄는 한국 17세 이하(U-17) 남자 축구대표팀이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의 외나무다리 승부에서 무릎을 꿇으며 32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레이스를 종료했다. 조별리그를 무패로 통과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 후보급 강호와의 일찌감치 맞붙는 극악의 대진운을 피하지 못한 것이 뼈아픈 결과로 작용했다.
한국 대표팀은 15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아스파이어 존 피치8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 카타르 2025' 32강전에서 잉글랜드에 0-2로 패배했다. 이로써 한국은 1987년, 2009년, 2019년에 기록했던 역대 최고 성적인 8강 재도전 기회를 또 한 번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또한 잉글랜드와의 역대 전적은 3무 3패로, 여전히 승리가 없는 열세를 이어갔다.
이번 대회는 참가국이 48개로 크게 늘고, 32강 토너먼트 방식이 도입되는 등 새로운 도전의 무대였다. 한국은 조별리그 F조에서 멕시코를 2-1로 꺾고, 스위스와 0-0으로 비긴 뒤 코트디부아르를 3-1로 제압하며 2승 1무, 승점 7점의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2019년 이후 6년 만의 토너먼트 진출이자 2015년 이후 10년 만의 조별리그 무패 통과라는 의미 있는 성과였으나, 득실차에서 스위스에 밀려 조 2위에 머물렀다. 그 결과, 토너먼트 첫 상대는 우승 후보 중 하나이자 2017년 우승국인 잉글랜드로 결정되었다.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만 11골을 몰아치며 화력을 과시했던 유럽 강호와의 32강 맞대결은 한국에 가장 까다로운 운명이었다.
백기태 감독은 강팀 잉글랜드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김지성, 남이안을 투톱으로 내세우는 공격적인 4-4-2 전형을 들고 나왔다. 경기 초반 흐름은 오히려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듯했다. 킥오프 1분도 채 되지 않은 전반 1분, 김도연이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 후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으나, 주심이 몸싸움 과정에서의 반칙을 선언하며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어진 전반 3분에도 김도연이 다시 한 번 슈팅을 시도했으나 크로스바를 넘어가 선제골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만약 이 이른 시간의 선제골이 인정되었다면 경기 양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위기를 넘긴 잉글랜드는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섰다. 팽팽했던 균형은 결국 한국의 불운으로 깨졌다. 전반 28분,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세스 리전의 낮은 크로스가 수비수 정희섭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자책골이 나오면서 한국은 선제 실점을 허용했다. 불운한 실점 이후 한국 수비가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잉글랜드는 전반 35분 브래들리 버로우스의 크로스를 레이건 헤스키가 완벽한 헤딩으로 연결해 추가골을 터뜨렸다. 과거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에밀 헤스키의 둘째 아들로 알려진 레이건 헤스키는 이 한 방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한국은 단 10분 사이에 두 골을 내주며 사실상 경기의 주도권을 내주었다.
전반 막판 한국은 김도민의 과감한 중거리 슛 등으로 만회골을 노렸으나, 유효슈팅 없이 전반을 마쳤다. 백기태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남이안과 김도연을 김지우, 정현웅으로 교체하며 공격진에 변화를 주고 승부수를 던졌다. 후반 27분에는 김예건 대신 김은성을 투입해 세트피스 변수를 만들고자 했다. 한국은 후반 막판 코너킥 상황에서 골키퍼 잭 포터의 선방에 막히는 등 끝까지 잉글랜드 골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골망을 열지 못했다. 경기는 추가 득점 없이 2-0 잉글랜드의 승리로 종료됐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조별리그 무패와 32강 진출이라는 희망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 강호를 상대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확인했다. 하지만 자책골과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의 골 결정력 부족은 유럽 정상급 유망주들로 구성된 잉글랜드와의 수준 차이를 드러내는 뼈아픈 과제로 남았다. 일본이 남아공을 3-0으로, 북한이 베네수엘라를 2-1로 꺾고 16강에 진출한 상황에서 멈춰 선 한국 U-17 대표팀의 도전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 쓰라린 패배가 다음 세대 한국 축구의 성장통과 더 큰 발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