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방울그룹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제3자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다시 1심 판단을 받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공소기각 판결을 깨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 법원은 대북송금 행위가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별도로 뇌물공여죄로도 심리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수원고법 형사2부는 10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의 공소기각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환송했다. 1심은 앞서 같은 대북송금 행위를 두고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만큼 제3자뇌물 혐의 기소는 이중기소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죄와 뇌물공여죄가 보호하려는 법익과 입법 목적이 다르다고 봤다. 외국환거래법은 외국환 관리 질서, 국제수지 균형, 통화 가치 안정 등 국가·경제적 법익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는 반면, 뇌물공여죄는 공무 수행의 공정성과 국가 기능의 공정성을 보호하는 범죄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북한 측에 외화를 제공했다는 실행 행위가 일부 겹친다고 해도, 두 혐의의 구성요건과 보호 법익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행위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죄와 뇌물공여죄는 상상적 경합이 아니라 실체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하는 경우 하나의 형으로 처벌하는 구조다. 반면 실체적 경합은 여러 범죄가 별도로 성립하는 관계다. 항소심은 이번 사건에서 대북송금이라는 사실관계 일부가 겹치더라도, 외환 관리 질서를 침해한 행위와 제3자뇌물 공여 혐의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지원 사업비 500만 달러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를 북한 측에 대신 지급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그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먼저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은 이후 이 대북송금이 이 대통령 등을 위한 제3자뇌물에 해당한다고 보고 김 전 회장을 추가 기소했다.
1심은 이 추가 기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미 대북송금 행위에 대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데, 같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제3자뇌물 혐의를 다시 기소한 것은 이중기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본안 판단 없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공소기각은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보고 재판을 끝내는 절차다.
검찰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은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제3자뇌물 혐의는 처벌 법령과 입법 목적, 범죄 구조가 서로 다른 독립된 범죄라고 주장해 왔다. 항소심은 이 같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으로 김 전 회장의 제3자뇌물 혐의는 다시 1심 법원에서 본안 심리에 들어가게 된다. 쟁점은 대북송금이 단순한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넘어, 당시 경기도와 관련된 제3자뇌물 공여로 평가될 수 있는지다. 검찰은 송금 목적과 경기도 대북사업, 방북 비용 대납 의혹 사이의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김 전 회장 측은 향후 재판에서 대북송금과 뇌물공여 혐의의 관련성을 다툴 가능성이 크다. 이미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심리된 사실관계를 다시 뇌물 혐의로 처벌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이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검찰은 두 범죄가 보호하는 법익이 다른 만큼 별도 심리가 가능하다는 항소심 판단을 근거로 공소유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이재명 대통령 관련 대북송금 의혹 재판과도 맞물려 있다. 김 전 회장의 송금 행위가 제3자뇌물로 인정되는지 여부는 관련 사건의 사실관계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항소심의 이번 결정은 유무죄 판단이 아니라, 1심 공소기각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절차적 판단이다.
항소심이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내면서 법정 공방은 다시 본안으로 옮겨가게 됐다. 앞으로의 재판에서는 800만 달러 송금의 목적, 경기도 대북사업과의 관련성, 당시 관계자들의 인식과 역할, 뇌물공여죄 성립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된다. 대북송금 사건이 외환 질서 위반을 넘어 공직 직무의 공정성 문제로까지 다뤄질 수 있는지가 다시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